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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흥그룹 창업주 정창선 회장 별세 본문

1. 정창선 회장 별세 소식과 사회적 의미
중흥그룹을 창업하고 키워온 정창선 회장이 별세했다는 소식은 건설업계를 넘어 재계 전반에 큰 울림을 남겼다. 대중적 인지도는 상대적으로 낮았지만, 그의 이름은 오랫동안 ‘내실 경영’과 ‘현장 중심’의 상징으로 통했다.
정창선 회장 별세는 한 개인의 죽음을 넘어, 한국 건설업 1세대 창업 경영인의 퇴장을 의미한다. 그는 부동산 경기의 부침 속에서도 비교적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온 보기 드문 인물로 평가받는다.
2. 미장 견습공에서 시작된 인생
정창선 회장의 출발점은 화려하지 않았다. 그는 젊은 시절 미장 견습공으로 건설 현장에서 일을 배우며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설계도보다 먼저 손에 익힌 것은 흙과 시멘트, 그리고 현장의 질서였다.
이 시절의 경험은 그의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기준이 됐다. 건설업은 책상 위에서 완성되지 않는다는 믿음, 현장을 알아야 사업을 키울 수 있다는 인식은 이후 그의 모든 경영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
2-1. 현장에서 배운 건설업의 본질
정창선 회장은 “건설은 사람과 신뢰의 산업”이라는 말을 자주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단순한 미사여구가 아니라, 현장에서 직접 체득한 철학이었다. 공정을 지키고, 약속을 어기지 않으며, 무리한 확장을 경계하는 태도는 이 시기 형성됐다.
3. 중흥그룹 창업과 성장의 과정
이후 그는 중흥그룹을 창업하며 본격적인 경영자의 길에 들어섰다. 초기 중흥그룹은 지역 기반의 중소 건설사에 불과했지만, 정창선 회장은 무리한 전국 확장 대신 지역 주택 사업을 중심으로 차근차근 성장시켰다.
부동산 호황기에도 과도한 차입을 경계했고, 불황기에는 공격적 투자를 자제했다. 이런 전략은 단기간 외형 성장을 원하는 시장 논리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중흥그룹을 안정적인 기업으로 만들었다.
3-1. 외형보다 내실을 택한 선택
정창선 회장은 건설업 특유의 경기 변동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크게 키우는 것보다 오래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이는 중흥그룹이 상대적으로 부채 비율이 낮고, 재무 구조가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배경이 됐다.
4. 정창선 회장의 경영 철학
정창선 회장의 경영 스타일은 조용했다. 언론 노출을 즐기지 않았고, 재계의 스포트라이트와도 거리를 뒀다. 대신 내부 관리와 품질, 그리고 책임을 중시했다.
그는 단기 실적보다 기업의 신뢰도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 이는 협력업체와의 관계, 지역 사회와의 관계에서도 드러났다. 이러한 태도는 중흥그룹이 비교적 분쟁이 적은 기업으로 평가받는 이유 중 하나다.
4-1. 조용하지만 단단한 리더십
정창선 회장의 리더십은 강한 카리스마보다 일관성에 가까웠다. 그는 한번 정한 원칙을 쉽게 바꾸지 않았고, 위기 상황에서도 감정적 결정을 피했다. 이런 리더십은 조직 내부에 안정감을 줬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토대가 됐다.
5. 대우건설 인수와 마지막 도전
정창선 회장의 경영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 중 하나는 대우건설 인수였다. 이는 중흥그룹 역사상 가장 대규모이자 상징적인 결정이었다. 안정 경영의 상징으로 불리던 중흥그룹이 과감한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이 인수는 단순한 규모 확대를 넘어, 중흥그룹이 국내 건설업의 핵심 플레이어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됐다. 동시에 정창선 회장이 여전히 도전을 멈추지 않았음을 보여준 선택이기도 했다.
6. 정창선 회장이 남긴 유산과 평가
정창선 회장 별세 이후, 그에 대한 평가는 한결같다. 그는 화려하지 않았지만,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걸어온 경영자였다. 무리한 확장 대신 안정, 속도보다 지속 가능성을 중시한 그의 선택은 시간이 지날수록 재평가되고 있다.
정창선 회장이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중흥그룹이라는 기업 그 자체만이 아니다. 현장을 중시하고, 원칙을 지키며, 오래가는 기업을 만들 수 있다는 하나의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그의 삶은 한국 건설업이 걸어온 한 시대의 축소판이자, 다음 세대 경영자들에게 남겨진 하나의 기준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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